오늘의 묵상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평안/9월 23일(수)
    2026-09-22 20:17:33
    남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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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사사기 10:1~18
    설교일 6. 9. 23일(수)

      1절에서 5절에는 두 사사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돌라와 야일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야기가 짧습니다. 두 사람인데 겨우 5절밖에 되지 않습니다. 돌라는 23, 야일은 22년을 사사로 통치했습니다.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돌라가 다스렸던 곳은 아비멜렉이 다스렸던 지역입니다. 돌라의 등장으로 아비멜렉 때의 혼돈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지역과 사람들을 돌라의 등장으로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통치하느냐에 따라서 평안이 깃들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 통치사느냐에 따라서 전쟁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가정이 달라지고, 교회가 달라지고, 국가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연, 지연, 사상이나 가치관을 따라 쉽게 선택합니다. 문제는 아비멜렉의 통치했던 이스라엘과 돌라가 통치했던 이스라엘은 전혀 달랐습니다.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사람은 그냥 크지 않습니다. 그냥 큰 그릇의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비전이 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짠 하고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시간에 의해서, 사건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는 어떤 사람들을 만들고 있을까요? 지금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 사람을 만들고 있을까요? 지금 목장교회는 어떤 사람을 만들고 있을까요? 담임목사에 의해서 어떤 성도들이 만들어지고 있을까요? 조금은 두렵습니다. 야일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가 살아 있을 동안은 그렇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거대한 댐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로막고 있는 담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성경에 보면 아주 의미있는 해석을 합니다. 그러니까 돌라와 야일이 사사가 되는 과정을 표현할 때 일어나서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라와 야일 이전의 사사들이 사사가 되는 과정을 표현할 때는 세우셨다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돌라와 야일은 사사가 되기 위해서 일어난 사람들이고, 이전의 사사들은 하나님이 사사로 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아비멜렉처럼 스스로 권력을 장악해서 사사가 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전의 사사들은 하나님이 세워 주셔서 사사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임명된 사람들, 하나님의 의해서 세워진 사람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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