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성공이 아닌 섬김의 꿈/5월 7일(목)
    2026-05-06 10:43:00
    남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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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창 37:1~17
    설교일 26. 5. 7일(목)

      먼저 어제 새벽에 잠깐 언급했듯이 에서의 후손 에돔 족속은 이미 왕정 체제를 갖출 만큼 야곱의 후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부터 보면 에서의 이야기는 족보만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야곱의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엄청나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역사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훨씬 더 강력한 나라가 있었지만 성경에는 거의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없는 나라의 이야기, 하나님 없는 인물 이야기, 하나님과 언약관계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비교에서도 동일한 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서의 후손, 에돔족속에 대한 기록의 족보의 형태로만 거의 기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야곱의 후손, 특히 요셉의 이야기는 엄청난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공간, 하나님 없는 시간, 하나님 없는 물질이나 재능이 하나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없이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 참된 삶입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여기서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라는 문장은 샬롬을 말할 수 없었더라의 의미입니다. 아버지의 편애, 그리고 야곱의 고자질 등으로 인해서 이미 야곱과 형제들의 관계는 깨어졌고 샬롬을, 평안을 말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구절을 샬롬의 마음으로 샬롬을 말할 수 없었다.’, ‘고운 모양으로 인삿말을 건네지 않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것은 아버지의 편애입니다. 형들의 바르지 못한 삶입니다. 여러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서 형제지만 샬롬을 말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도 샬롬을 말할 수 없는 관계들이 많습니다. 그런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고, 사건이 있고, 행동이 있습니다. 교회는 서로 샬롬을 말할 수 있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 요셉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그의 미래가 담긴, 그의 가족들의 미래가 담긴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문제가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진행되고, 문제가 있지만 하나님의 일을 진행됩니다. 형제들이 비웃었지만 그 꿈은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은 알아차리고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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