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3월 19일(목)
    2026-03-19 16:13:12
    남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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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마 7:7-12
    설교일 26.3.19(목)

     

      불임인데도 구하지 않았다

    사사기 132절에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의 아내가 불임인데, 아내와 남편인 마노아가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은 단순히 마노아의 아내가 불임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임의 문제가 있는데, 구하지 않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 마치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자신이 불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불임인데 구하지 않았다.

    구해야 열매를 얻는다

    왜 구하지 않았느냐? 자포자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영적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40년 동안의 블레셋의 지배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했다. 그래서 구하지 않았고,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매가 없었다. 자신들이 블레셋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구해야만 하나님의 일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의 불임의 문제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겼다. 구해야만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삶을 경험할 수 있다.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를 경험할 수 없다. 구하지 않으니까 영적인 열매가 없고, 삶의 열매가 없고, 교회의 열매가 없는 것이다. 구하지 않으니까 회복이 없고 새롭게 되지도 않는다.

    계속 기도하라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도 아무런 열매가 없을 때였다. 영적으로 황폐한 시기였다. 왜 그런가 하면 사사시대처럼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하지 않아서 황폐하고 열매가 없었다. 그래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라고 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비슷한 의미의 동사들을 반복해 놓았을까? 이런 배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계속해서 기도하라는 의미다. 응답의 시기와 방법은 하나님께 있어서 우리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래서 계속해서 구하라고 한다. 계속 기도하라고 한다. 중단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다. 중단하는 기도는 마귀를 더 강력하게 일하도록 만들어 놓은 무서운 기도다. 왜 기도를 중단하는가? 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믿는다면 결단코 부르짖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부르짖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열매가 없었다.

    간절함으로 기도하라

    간절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간절함은 영적인 열매를 맺는 사람들의 주된 특징이다. 간절함의 크기가 믿음의 크기다. 간절할수록 하나님은 더 급하게, 더 신속하게 응답하신다.

    확신하며 기도하라

    응답을 확신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확신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확신이 없는데 그렇게 한다는 것은 귀한 인생을, 시간과 열정을 허비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기도할 때 필요한 것이 확신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 그분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며, 그분의 일하심에 대한 확신이며, 그분이 응답하실 것에 대한 확신이다.

    행동하며 기도하라

    행동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냥 구하는 것이 아니라 찾으면서 구하라는 것이다. 두드리면서 구하라는 것이다. 입술로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마음으로, 삶으로 간절히 소망하고 찾으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답을 얻게 되고 열매와 결실을 얻게 된다.

    기도해야 하는 존재다

    영적인 황폐는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마노아는 자기의 아내가 불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녀가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에 40년 동안 지배받고 있었음에도 부르짖지 않았다.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임의 상태가 지속되고,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적 황폐가 지속되었다.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블레셋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영적으로 황폐한 시기였다. 이유는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데도, 문제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악의 영적인 상태를 맛보게 된 것이다. 인간은 구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구하지 않고 살 수 없는, 구하지 않고서는 설 수 없는 존재다.

    부르짖음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구해야 하는 존재, 부르짖어야 하는 존재, 두드려야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교만을 버리고, 아집을 버리고 인간 본래의 자리인 부르짖는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인간다운 모습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된다. 구하는 존재가, 응답받는 존재가 인간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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