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말씀 | 이사야 10:2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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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 26. 7. 29일(수) |
남은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0절에 등장하는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는 같은 의미입니다. ‘남은 자’라는 단어에서 희망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유다에 있어서 ‘남은 자’는 희망입니다. ‘남은 자’는 많이 있었지만 그 수가 정말 많이 줄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 사라지고 이제는 정말 작은 수가 남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20절에서 남은 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그러니까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은 참되게 의지하는 자가 ‘남은 자’인 것입니다. 앗수르를 의지하던 사람들의 수가 줄어든 것은 그들의 심판을 받아 죽었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는 끝까지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희망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수는 적지만 원수를 의지하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에 희망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쟁에서 남았다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닐 수 있습니다. ‘남은 자’가 유다와 이스라엘에 좋은 의미가 되는 것은 ‘남은 자’가 하나님께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21절에 보면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유다의 희망은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을 포로로 다 잡혀 갔습니다. 그들은 식민지의 통치자들을 적국에 붙잡혀 가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왔다는 것은 동족에게 통치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돌아온다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반면 남은 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돌아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남은 자’는 처음에는 좋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에 좋은 의미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끝까지 이스라엘에 남은 자들이고, 그들을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이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인 사람들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희망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남이 있었지만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순결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교회도 남은 자 같은 성도들에 의해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소수이지만 믿음을 지킨, 소수이지만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이킨 사람들에 의해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신앙 없는 다수보다 믿음의 사람 소수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쓰시기 때문입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첨부 파일 |
|---|---|---|---|
| 1962 | 남은 자가 돌아오리니/7월 29일(수) | 남일출 | |
| 1961 | 앗수르에게 화 있을진저/7월 28일(화) | 남일출 | |
| 1960 | 흑암에 땅에 비칠 큰 빛/7월 26일(주일) | 남일출 | |
| 1959 | 믿어야 굳게 선다/7월 24일(금) | 남일출 | |
| 1958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7월 23일(목) | 남일출 | |
| 1957 | 화 있을진저/7월 22일(수) | 남일출 | |
| 1956 | 내가 아닌 하나님/7월 21일(화) | 남일출 | |
| 1955 | 심판하려고 서시도다/7월 20일(월) | 최영근 | |
| 1954 | 소중한 것을 지키는 방법/7월 19일(주일) | 남일출 | |
| 1953 | 정화의 용광로, 회복의 은혜/7월 17일(금) | 남일출 | |
| 1952 | 용서하기 위한 질책/7월 16일(목) | 남일출 | |
| 1951 | 일상, 무너지지 않는 성소/7월 15일(수) | 남일출 | |
| 1950 | 어리석음과 지혜로움/7월 14일(화) | 남일출 | |
| 1949 |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세상에서/7월 10일(금) | 남일출 | |
| 1948 | 감사를 찾아라/7월 9일(목) | 남일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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