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앗수르에게 화 있을진저/7월 28일(화)
    2026-07-27 17:08:41
    남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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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이사야 10:5~19
    설교일 26. 7. 28일(화)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후에 남유다까지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남유다는 앗수르와 동맹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앗수르는 남유다까지 공격했습니다. 의지하던 것에 공격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의지한 결과입니다. 의지하면 안 되는 것을 의지하게 되면 결국 우리가 의지했던 것 때문에 위기가 오고 그것들에 의해서 심지어 공격까지도 당하게 됩니다. 문제는 알면서도 의지하면 안 되는 것들을 의지하게 됩니다. 앗수르는 따지고 보면 이방 나라입니다. 의지하면 안 되는 나라입니다. 결국 유다는 의지하던 앗수르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유다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앗수르도 자신의 본문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였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먼저 5절을 보겠습니다.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앗수르는 하나님 보시기에 불쌍한 나라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라를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제는 그들의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앗수르를 불쌍한 나라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앗수르를 하나님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을 모르고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신다고 해서 정의롭거나 공의롭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것을 몰라서 교만의 길로 갔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앗수르를 심판하셨습니다. 주전 612년에 앗수르는 망합니다.

      15절입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나라나 사람, 조직이 믿음이 없으면 얼마든지 쉽게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망했습니다. 그들의 교만이 나라를 멸망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는 나라는 아닙니다.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들은 쉽게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해졌습니다. 성도들도 큰 것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위대한 일을 해서, 정말 놀라울 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헛된 영광에 속아서 교만해진 것입니다. 우리도 생각보다 작은 것으로 인해서 교만해집니다. 저도, 제 가족들도, 성도들도 생각보다 작은 것 때문에 교만해집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서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면 교만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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