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말씀 | 요 1:35~51 |
|---|---|
| 설교일 | 26. 2. 3일(화) |
먼저 35절과 36절을 보겠습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와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요한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를 하자 제자 중 두 사람이 세례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제자 중 두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얼마든지 배신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어디에도 그런 뉘앙스가 없습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세례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런 모습이 가능했던 것은 세례요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9절에 34절을 보면 먼저 세례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 로고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소리는 사라지지만 말씀은 영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는 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 예비하는 자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한 명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이고, 한 명은 전통적으로 사도 요한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훨씬 더 섭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표현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감사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답게 세례요한처럼 행한 요한의 제자가 있습니다. 안드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후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명과 집중적으로 사역을 하고 안드레는 배제되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안드레는 자신의 형제인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했고, 오병이어 사건에서도 빵과 도시락을 가진 소년을 예수님께 소개하게 됩니다. 그의 스승 세례요한처럼 소개하는 자, 준비하는 자, 예비하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어떤 모습으로 쓰임을 받아도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아니어도 괜찮아야 합니다. 안드레처럼 소개하고, 준비하는 자이지만 드러나지 않아도, 메인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야 합니다. 세례요한도 친척 동생을 소개하는 자로, 예비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섭섭한 마음은 언제든지 사고 칠 준비가 된 마음입니다. 섭섭한 마음은 용납하기 어려운 마음입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첨부 파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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