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말씀 | 창 11: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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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 26. 1. 16일(금) |
셈에서 아브람에 이르는 족보, 계보입니다. 셈을 아르박삿을 이었고, 아르박삿을 셀라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아브람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셈의 족보에서 그리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셈에서 아브람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보면 믿음의 가문들도 비슷합니다. 믿음이 4대, 5대 이어진 가문들을 봐도 4대, 5대 모두가 믿음의 사람은 아닌 경우도 많고, 모두가 특별한 믿음을 가지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셈을 통해 아브람까지 믿음을 이어가셨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이름이 날 사건이 별로 없었지만, 두드러진 것이 없었지만 믿음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평범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믿음을 이어가십니다. 그렇다고 반성할 것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아브람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하나님과 함께 함이 없는 삶이었기 때문에 믿음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의 없는 듯한 존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노아 이후에 바벨탑 사건과 데라 이야기가 가장 두드러져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다뤘고, 이제 데라의 삶입니다. 어쨌든 데라의 삶에서 아브람이 나오고 아브람의 이야기로 가득 차기 시작합니다. 아브람의 출발점은 데라입니다. 데라의 삶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들을 아주 늦게 낳았다는 것입니다. 보통 30세 전후에 자녀를 낳는데 데라는 7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두 번째는 70세 넘어 낳은 아들인 하란이 데라보다 먼저 죽게 됩니다. 이런 삶이 이 가정에 믿음의 결단을 내리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통로가 됩니다. 새로운 믿음의 삶을 출발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동하게 된 것도 이런 일들이 그들의 삶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면 아브람은, 데라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곳은 너무 화려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입원도 있고, 매력도 있는 도시라서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니다. 슬픔이, 고통이 데라의 가족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했던 것입니다. 고난은 순종의 통로입니다. 슬픔도 순종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슬픔은 영적인 삶의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고난과 슬픔은 떠남의 매개체, 버림의 매개체가 됩니다. 최악이 최선의 삶을 인도합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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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0 | 새 이름, 새 믿음/1월 23일(금) | 남일출 | |
| 1819 | 불신앙이 초래하는 것들이 있다/1월 22일(목) | 남일출 | |
| 1818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1월 21일(수) | 남일출 | |
| 1817 |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1월 20일(화) | 남일출 | |
| 1816 | 위기를 기회로/1월 18일(주일) | 남일출 | |
| 1815 | 고난은 믿음의 매개체다/1월 16일(금) | 남일출 | |
| 1814 | 멈춘 탑, 열린 길/1월 15일(목) | 남일출 | |
| 1813 | 열방의 기원/1월 14일(수) | 남일출 | |
| 1812 | 하나님이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다/1월 12일(월) | 최영근 | |
| 1811 | 기억의 은혜, 예배의 시작/1월 11일(주일) | 남일출 | |
| 1810 | 심판의 물결, 구원의 방주/1월 9일(금) | 손병욱 | |
| 1809 | 죽음 속에 빛난 동행/1월 8일(목) | 남일출 | |
| 1808 | 죄가 망치고 있는 것들/1월 7일(수) | 남일출 | |
| 1807 | 죄가 한 일입니다/1월 6일(화) | 남일출 | |
| 1806 | 사람을 찾아오십니다/1월 5일(월) | 최영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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